|
1597년 7월 11일 |
|
十一日庚子。晴。卞弘達,林仲亨來見。 |
|
十一日庚子。晴。卞弘達,林仲亨來見。 |
|
십일일경자。청。변홍달,림중형래견。 |
|
11일 경자. 맑음. 변홍달, 임중형이 와서 보았다. |
|
|
1597년 7월 12일 |
|
十二日辛丑。方應元,玄應辰,洪禹功,林英立等。自朴名賢處來到。 |
|
十二日辛丑。方應元,玄應辰,洪禹功,林英立等。自朴名賢處來到。 |
|
십이일신축。방응원,현응진,홍우공,림영립등。자박명현처래도。 |
|
12일 신축. 방응원, 현응진, 홍우공, 임영립 등이 박명현의 거처에서부터 왔다. |
|
|
1597년 7월 13일 |
|
十三日壬寅。晴。南海送簡。多致食物。又云戰馬率去。晩。李台壽,趙信玉,洪大邦來言討賊之事。 |
|
十三日壬寅。晴。南海送簡。多致食物。又云戰馬率去。晩。李台壽,趙信玉,洪大邦來言討賊之事。 |
|
십삼일임인。청。남해송간。다치식물。우운전마솔거。만。리태수,조신옥,홍대방래언토적지사。 |
|
13일 임인. 맑음. 남해에서 편지가 보내왔다. 많은 먹을 것을 보내왔다. 전마를 인솔해 겠다고 했다. 늦은시각, 이태수, 조신옥, 홍대방이 와서 적을 토벌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
|
|
1597년 7월 14일 |
|
十四日癸卯。晴。戰馬率來事。送鄭翔溟于南海。與方應元,尹先覺,玄應辰,洪禹功等話。禹功不欲從軍。托臂病可愕。○黃從事送鄭仁恕問安。且示金海附賊人金億告目。則初七日倭船五百餘隻。出來于釜山。初九日倭船千隻合勢。與我舟師。相戰于絶影島前洋。而我戰船漂到于豆毛浦。七隻無去處云。聞之不勝憤惋。卽馳去于黃從事處議事。 |
|
十四日癸卯。晴。戰馬率來事。送鄭翔溟于南海。與方應元,尹先覺,玄應辰,洪禹功等話。禹功不欲從軍。托臂病可愕。○黃從事送鄭仁恕問安。且示金海附賊人金億告目。則初七日倭船五百餘隻。出來于釜山。初九日倭船千隻合勢。與我舟師。相戰于絶影島前洋。而我戰船漂到于豆毛浦。七隻無去處云。聞之不勝憤惋。卽馳去于黃從事處議事。 |
|
십사일계묘。청。전마솔래사。송정상명우남해。여방응원,윤선각,현응진,홍우공등화。우공불욕종군。탁비병가악。○황종사송정인서문안。차시김해부적인김억고목。즉초칠일왜선오백여척。출래우부산。초구일왜선천척합세。여아주사。상전우절영도전양。이아전선표도우두모포。칠척무거처운。문지불승분완。즉치거우황종사처의사。 |
|
14일 계묘. 맑음. 전마를 인솔해서 보내는 일로 정상명을 남해로 보냈다. 방응원, 윤선각, 현응진, 홍우공 등과 이야기했다. 우공이 종군하고 싶지 않아 어깨에 병이났다고 했다. 놀랄일이다. 황종사가 정인서를 보내서 문안했다. 또 김해에서 적에게 붙잡혔던 김억의 고목을 보여주었다. 곧 초 7일 오백여척이 모였다. 부산에서 출항하여 초 9일 왜선 일천척이 합세하였다. 아수군과 절영도 앞바다에서 전투하여 아국전선이 표류하다 두모포에 닿았다고 한다. 칠척은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듣고 분함을 이기지 못했다. 황종사의 거처로 가서 이일에 대해 의논했다. |
|
|
1597년 7월 15일 |
|
十五日甲辰。或雨或晴。李中軍德弼來。因聞舟師二十餘隻爲賊所敗。痛憤痛憤。 |
|
十五日甲辰。或雨或晴。李中軍德弼來。因聞舟師二十餘隻爲賊所敗。痛憤痛憤。 |
|
십오일갑진。혹우혹청。리중군덕필래。인문주사이십여척위적소패。통분통분。 |
|
15일 갑진. 비가오기도 하고 개기도 하였다. 중군 이덕필이 왔다. 수군 전선 이십여척이 적과 전투하여 졌다고 한다. 분하고 또 분했다. |
|
|
1597년 7월 16일 |
|
十六日乙巳。夕。靈巖松進面居私奴世男。自西生浦赤身到來。問其由。則七月初五日。以虞候所騎船格軍。漆川梁到泊。初六日。入于玉浦。初七日未明。由末串到多大浦。則倭船八隻留泊。諸船直突。倭人無遺下陸。空船掛在。我舟師曳出衝火。仍向釜山絶影島外洋。値賊船無慮千餘隻。自對馬渡來。相戰計料。則倭船散亂回避。終不得勦捕。世男所騎船及他船六隻。不能制船。漂到西生浦前洋。下陸之際。幾盡就戮。世男獨入林藪。膝行得生。艱難來此云。聞來。極可愕矣。我國所恃。惟在舟師。舟師如是。無復可望。船將李燁爲賊所縛云。尤極痛惋。 |
|
十六日乙巳。夕。靈巖松進面居私奴世男。自西生浦赤身到來。問其由。則七月初五日。以虞候所騎船格軍。漆川梁到泊。初六日。入于玉浦。初七日未明。由末串到多大浦。則倭船八隻留泊。諸船直突。倭人無遺下陸。空船掛在。我舟師曳出衝火。仍向釜山絶影島外洋。値賊船無慮千餘隻。自對馬渡來。相戰計料。則倭船散亂回避。終不得勦捕。世男所騎船及他船六隻。不能制船。漂到西生浦前洋。下陸之際。幾盡就戮。世男獨入林藪。膝行得生。艱難來此云。聞來。極可愕矣。我國所恃。惟在舟師。舟師如是。無復可望。船將李燁爲賊所縛云。尤極痛惋。 |
|
십륙일을사。석。령암송진면거사노세남。자서생포적신도래。문기유。즉칠월초오일。이우후소기선격군。칠천량도박。초륙일。입우옥포。초칠일미명。유말곶도다대포。즉왜선팔척류박。제선직돌。왜인무유하륙。공선괘재。아주사예출충화。잉향부산절영도외양。치적선무려천여척。자대마도래。상전계료。즉왜선산란회피。종불득초포。세남소기선급타선륙척。불능제선。표도서생포전양。하륙지제。기진취륙。세남독입림수。슬행득생。간난래차운。문래。극가악의。아국소시。유재주사。주사여시。무복가망。선장리엽위적소박운。우극통완。 |
|
16일 을사. 저녁. 영암 송진면에 사는 사노 세남이 서생포로 부터 알몸으로 왔다. 그 연유에 대해 물었는데, 7월 5일 우후의 전선에 격군으로 타서 칠천량에 정박하고 있었다고 했다. 6일 옥포에 들어갔다고 했다. 7일 미명에 말곶을 경유하여 다대포에 도착했다고 했다. 왜선 8척이 정박하고 있었고 아군 전선이 돌격했는데 왜인들은 모두 상륙하여 빈 배만 있었다고 했다. 아군 수군이 적선을 끌어다 불태웠다고 했다. 부산 절영도 바깥바다로 향했다고 했다. 적선은 무려 일천여척이나 되었다고 했다. 대마도로부터 왔는데 아수군이 전투하려고 했지만 왜선은 흩어져서 전투를 피했기 때문에 적을 무찌를 수 없었다고 했다. 세남이 탄배와 다른 6척의 전선들이 제어가 되지 않아 표류하다 서생포 앞바다에 닿았다고 했다. 상륙했을 때 거의 대부분 도륙 당했다고 했다. 세남은 홀로 숲에 숨어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놀랄 일이다. 아국에서 믿을 것은 수군이거늘 수군이 이런 상황이라면 가망이 없다. 선장 이엽위가 적에게 붙잡혀갔다고 하니 더욱 원통하다. |
|
|
1597년 7월 17일 |
|
十七日丙午。雨。送李喜男于黃從事處。傳世男之言。 |
|
十七日丙午。雨。送李喜男于黃從事處。傳世男之言。 |
|
십칠일병오。우。송리희남우황종사처。전세남지언。 |
|
17일 병오. 비내림. 이희남을 황종사의 거처에 보냈다. 세남의 말을 전하도록 했다. |
|
|
1597년 7월 18일 |
|
十八日丁未。晴。曉。李德弼,卞弘達來傳。十六日曉。舟師大敗。統制使元均,全羅右水使李億祺忠淸水使崔湖及諸將等多數被害云。不勝痛哭。有頃。元帥到來曰。事已至此。無可奈何。話到巳時。不能定策。余告以吾往沿海之地。聞見而定云。則元帥欣然。余與宋大立。柳滉,尹先覺,方應元,玄應辰,林英立,李元龍,李喜男,洪禹功發程。到三嘉縣。則主倅新到出待。韓致謙亦來。 |
|
十八日丁未。晴。曉。李德弼,卞弘達來傳。十六日曉。舟師大敗。統制使元均,全羅右水使李億祺忠淸水使崔湖及諸將等多數被害云。不勝痛哭。有頃。元帥到來曰。事已至此。無可奈何。話到巳時。不能定策。余告以吾往沿海之地。聞見而定云。則元帥欣然。余與宋大立。柳滉,尹先覺,方應元,玄應辰,林英立,李元龍,李喜男,洪禹功發程。到三嘉縣。則主倅新到出待。韓致謙亦來。 |
|
십팔일정미。청。효。리덕필,변홍달래전。십륙일효。주사대패。통제사원균,전라우수사리억기충청수사최호급제장등다수피해운。불승통곡。유경。원수도래왈。사이지차。무가내하。화도사시。불능정책。여고이오왕연해지지。문견이정운。즉원수흔연。여여송대립。류황,윤선각,방응원,현응진,림영립,리원룡,리희남,홍우공발정。도삼가현。즉주쉬신도출대。한치겸역래。 |
|
18일 정미. 맑음. 새벽. 이덕필, 변홍달이 와서 전했다. 16일 새벽. 수군에 크게 패했다고 했다. 통제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 다수가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통곡을 이길 수가 없었다. 저물녁에 원수가 도착해서 말하길, 일이 이미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사시까지 이야기 했다. 뾰족한 수를 정하지 못하고 내가 직접 해안 지역으로 가서 듣고 보고 난 후 어찌 할지 정하겠다고 했더니 원수는 반겼다. 나는 송대립, 유황, 윤선각, 방응원, 현응진, 임영립, 이원룡, 이희남 홍방공 등과 같이 출발하여 삼가현에 도착했다. 고을 현령이 나와서 맞았다. 한치겸도 왔다. |
|
|
1597년 7월 19일 |
|
十九日戊申。雨雨。上丹城東山山城。觀其形勢則極險。賊不能窺也。因宿于丹城。 |
|
十九日戊申。雨雨。上丹城東山山城。觀其形勢則極險。賊不能窺也。因宿于丹城。 |
|
십구일무신。우우。상단성동산산성。관기형세즉극험。적불능규야。인숙우단성。 |
|
19일 무신. 계속 비가 왔다. 단성 동산 산성에 올라 형세를 보았는데 극히 험했다. 적이 엿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단성에서 잤다. |
|
|
1597년 7월 20일 |
|
二十日己酉。終日雨雨。主倅來見。午到晉州鼎盖山城下江亭。晉牧來見。宿于屈洞李希萬家。 |
|
二十日己酉。終日雨雨。主倅來見。午到晉州鼎盖山城下江亭。晉牧來見。宿于屈洞李希萬家。 |
|
이십일기유。종일우우。주쉬래견。오도진주정개산성하강정。진목래견。숙우굴동리희만가。 |
|
20일 기유. 종일 비가 왔따. 고을 현령이 와서 보았다. 오후에 진주 정개 산성 아래 강정에 도착했다. 진주목사가 와서 보았다. 굴동 이희만의 집에서 묵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