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1597년 정유년

1597년 정유년 7월

먹물 한자 2022. 11. 2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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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7월 1일
 
 
초일일경인。효우만청。시일。내인묘국기。이황종사청적우대천변운。가악。
 
초일일 경인. 새벽에 비오다 저녁에 개었다. 인종의 제삿날인데 황종사가 큰 개울가에서 피리소리를 즐기고 있었다고 한다. 놀랄일이다.

 

1597년 7월 2일
 
 
초이일신묘。청。
 
초이일 신묘. 맑음.

 

1597년 7월 3일
 
使使
 
초삼일임진。청。정읍군사리량,최언환,건손등삼인。사환사송래。○합천군수오운래견。다언산성지사。○오후。왕우원수진。즉좌병사군관。압강왜이명이래。내청정소솔운。
 
초3일 임진. 맑음. 정읍 군사 이량, 최언환, 건손 등 세사람을 심부름군으로 보내왔다. 합천 군수 오운이 와서 보았다. 산성에 대한 일로 많은 말을 했다. 오후, 원수의 진에 갔더니 좌병사 군관이 왜 포로 2명을 압송해 갔다. 청정의 부하라고 했다.

 

1597년 7월 4일
 
 
초사일계사。청。황종사송정인서문안。리방급류황래자모군。
 
초4일 계사. 맑음. 황종사가 정인서를 보내서 문안했다. 이방과 유황이 군인 모집하는 일을 하다 돌아왔다.

 

1597년 7월 5일
 
 
초오일갑오。우。변존서왕마흘방。
 
초 5일 갑오. 비내림. 변존서가 마흘방에 갔다.

 

1597년 7월 6일
 
 
초륙일을미。청。변존서자마흘방환래。안각형제。역수흥백이래。
 
초 6일 을미. 맑음. 변존서가 마흘방에서 돌아왔다. 안각형제도 흥백을 따라 왔다.

 

1597년 7월 7일
 
使
 
초칠일병신。청。의녕쉬김전래자고령。다언병사처사전도。
 
초 7일 병신. 맑음. 의령 현감 김전이 고령에서 왔다. 병사의 처사가 앞뒤가 맞지않는 것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1597년 7월 8일
 
 
초팔일정유。청。가주리어해여최태보래견。
 
초 8일 정유. 맑음. 집주인 이언해와 최태보가 함께 와서 보았다.

 

1597년 7월 9일
 
 
초구일무술。청。명욕송열우아산。련친비읍。향야불매。
 
초 9일 무술. 맑음. 내일 열 아산에 보내고자 한다. 어머님이 그리워 슬피 울었다. 밤이 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1597년 7월 10일
 
 
초십일기해。청。이송열여변존서사。좌이대효。정불능자억。통곡이송。○황종사래화이시。석。독좌공당。회사심악。향야불매。
 
초 10일 기해. 맑음. 열을 보내고 변존서와 앉아 새벽을 기다렸다. 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통곡하며 보냈다. 황종사가 와서 이야기 했다. 저녁, 홀로 빈 반에 앉았다. 후회의 마음이 심하게 솟구쳐서 잠들지 못하고 밤을 지새웠다.

 

1597년 7월 11일
 
 
십일일경자。청。변홍달,림중형래견。
 
11일 경자. 맑음. 변홍달, 임중형이 와서 보았다.

 

1597년 7월 12일
 
 
십이일신축。방응원,현응진,홍우공,림영립등。자박명현처래도。
 
12일 신축. 방응원, 현응진, 홍우공, 임영립 등이 박명현의 거처에서부터 왔다.

 

1597년 7월 13일
 
 
십삼일임인。청。남해송간。다치식물。우운전마솔거。만。리태수,조신옥,홍대방래언토적지사。
 
13일 임인. 맑음. 남해에서 편지가 보내왔다. 많은 먹을 것을 보내왔다. 전마를 인솔해 겠다고 했다. 늦은시각, 이태수, 조신옥, 홍대방이 와서 적을 토벌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1597년 7월 14일
 
 
십사일계묘。청。전마솔래사。송정상명우남해。여방응원,윤선각,현응진,홍우공등화。우공불욕종군。탁비병가악。○황종사송정인서문안。차시김해부적인김억고목。즉초칠일왜선오백여척。출래우부산。초구일왜선천척합세。여아주사。상전우절영도전양。이아전선표도우두모포。칠척무거처운。문지불승분완。즉치거우황종사처의사。
 
14일 계묘. 맑음. 전마를 인솔해서 보내는 일로 정상명을 남해로 보냈다. 방응원, 윤선각, 현응진, 홍우공 등과 이야기했다. 우공이 종군하고 싶지 않아 어깨에 병이났다고 했다. 놀랄일이다. 황종사가 정인서를 보내서 문안했다. 또 김해에서 적에게 붙잡혔던 김억의 고목을 보여주었다. 곧 초 7일 오백여척이 모였다. 부산에서 출항하여 초 9일 왜선 일천척이 합세하였다. 아수군과 절영도 앞바다에서 전투하여 아국전선이 표류하다 두모포에 닿았다고 한다. 칠척은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듣고 분함을 이기지 못했다. 황종사의 거처로 가서 이일에 대해 의논했다.

 

1597년 7월 15일
 
 
십오일갑진。혹우혹청。리중군덕필래。인문주사이십여척위적소패。통분통분。
 
15일 갑진. 비가오기도 하고 개기도 하였다. 중군 이덕필이 왔다. 수군 전선 이십여척이 적과 전투하여 졌다고 한다. 분하고 또 분했다.

 

1597년 7월 16일
 
西西
 
십륙일을사。석。령암송진면거사노세남。자서생포적신도래。문기유。즉칠월초오일。이우후소기선격군。칠천량도박。초륙일。입우옥포。초칠일미명。유말곶도다대포。즉왜선팔척류박。제선직돌。왜인무유하륙。공선괘재。아주사예출충화。잉향부산절영도외양。치적선무려천여척。자대마도래。상전계료。즉왜선산란회피。종불득초포。세남소기선급타선륙척。불능제선。표도서생포전양。하륙지제。기진취륙。세남독입림수。슬행득생。간난래차운。문래。극가악의。아국소시。유재주사。주사여시。무복가망。선장리엽위적소박운。우극통완。
 
16일 을사. 저녁. 영암 송진면에 사는 사노 세남이 서생포로 부터 알몸으로 왔다. 그 연유에 대해 물었는데, 7월 5일 우후의 전선에 격군으로 타서 칠천량에 정박하고 있었다고 했다. 6일 옥포에 들어갔다고 했다. 7일 미명에 말곶을 경유하여 다대포에 도착했다고 했다. 왜선 8척이 정박하고 있었고 아군 전선이 돌격했는데 왜인들은 모두 상륙하여 빈 배만 있었다고 했다. 아군 수군이 적선을 끌어다 불태웠다고 했다. 부산 절영도 바깥바다로 향했다고 했다. 적선은 무려 일천여척이나 되었다고 했다. 대마도로부터 왔는데 아수군이 전투하려고 했지만 왜선은 흩어져서 전투를 피했기 때문에 적을 무찌를 수 없었다고 했다. 세남이 탄배와 다른 6척의 전선들이 제어가 되지 않아 표류하다 서생포 앞바다에 닿았다고 했다. 상륙했을 때 거의 대부분 도륙 당했다고 했다. 세남은 홀로 숲에 숨어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놀랄 일이다. 아국에서 믿을 것은 수군이거늘 수군이 이런 상황이라면 가망이 없다. 선장 이엽위가 적에게 붙잡혀갔다고 하니 더욱 원통하다.

 

1597년 7월 17일
 
 
십칠일병오。우。송리희남우황종사처。전세남지언。
 
17일 병오. 비내림. 이희남을 황종사의 거처에 보냈다. 세남의 말을 전하도록 했다.

 

1597년 7월 18일
 
使使使沿
 
십팔일정미。청。효。리덕필,변홍달래전。십륙일효。주사대패。통제사원균,전라우수사리억기충청수사최호급제장등다수피해운。불승통곡。유경。원수도래왈。사이지차。무가내하。화도사시。불능정책。여고이오왕연해지지。문견이정운。즉원수흔연。여여송대립。류황,윤선각,방응원,현응진,림영립,리원룡,리희남,홍우공발정。도삼가현。즉주쉬신도출대。한치겸역래。
 
18일 정미. 맑음. 새벽. 이덕필, 변홍달이 와서 전했다. 16일 새벽. 수군에 크게 패했다고 했다. 통제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 다수가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통곡을 이길 수가 없었다. 저물녁에 원수가 도착해서 말하길, 일이 이미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사시까지 이야기 했다. 뾰족한 수를 정하지 못하고 내가 직접 해안 지역으로 가서 듣고 보고 난 후 어찌 할지 정하겠다고 했더니 원수는 반겼다. 나는 송대립, 유황, 윤선각, 방응원, 현응진, 임영립, 이원룡, 이희남 홍방공 등과 같이 출발하여 삼가현에 도착했다. 고을 현령이 나와서 맞았다. 한치겸도 왔다.

 

1597년 7월 19일
 
宿
 
십구일무신。우우。상단성동산산성。관기형세즉극험。적불능규야。인숙우단성。
 
19일 무신. 계속 비가 왔다. 단성 동산 산성에 올라 형세를 보았는데 극히 험했다. 적이 엿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단성에서 잤다.

 

1597년 7월 20일
 
宿
 
이십일기유。종일우우。주쉬래견。오도진주정개산성하강정。진목래견。숙우굴동리희만가。
 
20일 기유. 종일 비가 왔따. 고을 현령이 와서 보았다. 오후에 진주 정개 산성 아래 강정에 도착했다. 진주목사가 와서 보았다. 굴동 이희만의 집에서 묵었다.

 

1597년 7월 21일
 
使宿
 
이십일일경술。청。조발。도곤양군。즉군수리천추재。군민다무본。혹수조곡。혹리모전。오후도로량。즉거제쉬안위,영등조계종등십여인래통곡。피출군민。막불호곡。경상수사주피불견。우후리의득래견。인문취패지상。인개읍이언대장견적선분지치。숙우거제선상。여본쉬화도사경。소불첩목。인득안질。
 
21일 경술. 맑음. 아침에 출발해서 곤양군에 도착했다. 군수 이천추와 군민 다수가 힘써서 올벼를 거두기도 하고 밀보리 밭을 갈기도 하고 있었다. 오후에 노량에 도착했다. 거제 현령 안위, 영등, 조계종 등 십여인이 와서 통곡했다. 피해온 군사와 백성들이 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상수사는 도망가서 보이지 않았다. 우후 이의득이 와서 보았다. 패배의 상황을 물었는데 대장이 적을 보자 마자 달아났다는 것을 듣고 모든 사람이 함께 울었다. 거제에서 배위에서 묵었다. 거제 현령과 사경까지 이야기 했다. 조금도 눈을 붙이지 못해 눈에 병이 생겼다.

 

1597년 7월 22일
 
宿
 
이십이일신해。청。조。배설래견。다언원공패망사。일만。도남해쉬박대남재처。즉병세기불능구의。오후。도곤양。기불평숙。
 
22일 신해. 맑음. 아침. 배설이 와서 보았다. 원공의 패한 일에 대해 많이 이야기 했다. 남해 현령 박대남의 처소에 도착했다. 병세가 구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오후 곤양에 도착했다. 몸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로 잤다.

 

1597년 7월 23일
 
宿宿
 
이십삼일임자。혹우혹청。성공사부송대립。선송우원수부。수발도십오리원。하마잠헐。도진주굴동전숙처숙。배백기역래。
 
23일 임자. 비가오기도 하고 개기도 하였다. 만들던 공문을 송대립에게 주어 원수부에 보내고 출발하여 십오리원에 도착했다. 말에서 내려 잠시 쉬었다. 진주 굴동 전숙소에 도착해서 묵었다. 배백기도 왔다.

 

1597년 7월 24일
 
使
 
이십사일계축。우우。한치겸,리안인귀우부사처。식후。이접우리홍훈가。방응원자정개성。래전황종사도산성운。배조방장래견。
 
24일 계축. 계속 비가 왔다. 한치겸, 이안인이 부서의 거처로 돌아갔다. 식후 이홍훈의 집으로 옮겼다. 정개성에서 방응원이 와서 황종사가 산성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배조방장이 와서 보았다.

 

1597년 7월 25일
 
 
이십오일갑인。청。황종사송간문안。배수립급차지주인리홍훈래견。박남해송인언명일입래。
 
25일 갑인. 맑음. 황종사가 편지를 보내 문안했다. 배수립, 땅주인 이홍훈이 와서 보았다. 박남해가 사람을 보내 내일 들어온다고 말을 전했다.

 

1597년 7월 26일
 
宿
 
이십륙일을묘。혹우혹청。왕우정성하송정。여황종사급진목화。일만。환도숙처。
 
26일 을묘. 비가오기도 하고 맑기도 했다. 정성 아래 송정에 갔다. 황종사와 진주목사와 함께 이야기했다. 날이 저물어 숙소에 돌아왔다.

 

1597년 7월 27일
 
 
이십칠일병진。우우종일。이주우정성월변손경례가。
 
27일 병진. 종일 비가왔다. 정성 건너편 손경례의 집으로 옮겼다.

 

1597년 7월 28일
 
 
이십팔일정사。우우。리희량래견。초경。리동지천급진목여소촌찰방리시경래。론책응사。
 
28일 정사. 계속 비가 왔다. 이희량이 와서 보았다. 초경, 이동지, 진주목사, 소촌 찰방 이시경이 와서 대응 방안에 대해 의논했다.

 

1597년 7월 29일
 
 
이십구일무오。혹우혹청。출우천변。점군치마。즉원수소송。개무마。우무궁전。무용의。가탄가탄。박남해래견。
 
29일 무오. 비가 오기도 하고 개기도 했다. 냇가에 나갔다. 군사들을 점고하고 말을 달렸다. 원수가 보낸 군대는 군마도 없고 활과 화살도 없다. 어떻게 전투를 할 것인가 탄식이 나온다. 박남해가 와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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