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1592년 임진년

1592년 6월 당포파왜병장 (피난민, 전공, 피해상황)

먹물 한자 2022. 8. 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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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前後討賊時。南海以東熊川等七八邑父老士女避亂之輩。竄伏山谷。觀望臣等追擊賊船。如得再生之路。莫不欣欣來說賊之去留。窮極指示。極爲慘惻。倭船所得米布等物分給。使之安居。其中如向化鮑作之輩。携親挈家。率其隣族。自投營城者連續不絶。前後來托之數。幾至二百餘名。而各勤其業。鎭長安居。營近長生浦等草土豐衍。人戶阜盛處。分接安護。倭船被擄我國人。搜得生還。無異斬倭。焚船時。各別搜覓。愼勿妄殺事。申飭約束。諸將等被擄人生擒男女並六名內。他餘人。年或迷弱。被擄日淺。賊之所爲。莫知如何。其中唐項浦外洋。鹿島萬戶鄭運所擒東萊接私奴億萬。年今十三。斷髮爲倭。推問招內。東萊東門外蓮池洞居人。生變卽時。隨父母入城。日不記四月。賊倭無數來集。圍城五匝。餘賊遍野。先鋒之賊被甲。各持大郅介。着廣大頭口者百餘人。突入衝城。一邊橫立竹梯。處處踰越。城旣見陷。殺伐斯極。小人蒼黃間。相失親兄。莫知所向。仰天呼泣。有一倭扶手刦率。直到釜山。留五六日後。移載其船。船有七八倭。見我喧呼揮劍欲打。率往之倭。翼而掩之。潛置粧下。而所泊倭船元數。不知其幾許。載船過五六日後。大船三十餘艘。同時發船。指向右道。其中層閣船。將帥所居。諸船雲集其下。似聽其令。有時數三船式。分運作賊。焚蕩閭閻。劍害牛馬。布穀雜物。駄載其船。如是者日或再三。而所經島號村名。莫知何方。而今六月初五日。一運四船。偕往鎭海船滄。半餘入城。未久。鎭海城外數千兵甲。突入同縣。兵勢滔天。則入城之賊。大叫奔還乘船。促櫓至中洋。又見風檣戰舸。蔽自西海。賊徒等自知蹤迹莫遁。唇燋口燥。心膽俱摧。棄其大船。合乘小艇。不遠浦口。促櫓奔入。小人及昨日被擄鎭海居寺奴羅斤乃等。幷大船棄置。仍而被擒。倭人各持槍劍鐵丸。朝夕之飯。半雜沙土。他餘事。語音相殊。未能解聽云云。栗浦前洋接戰時。鹿島萬戶鄭運所擒天城水軍鄭達望。年今十四。推問招內。生變後隨父母入山。迫於飢困。日不記今六月初生間。天城近野。牟田收穗。連命下來。爲倭所擄。當日永登近處依岸泊船。倭人所得物貨。曝陽擧風。而我國舟師不意突進。倭人等顚倒失措。卽斷碇索。呼噪乘船。遠遁外洋。力盡被捕云。各人等俱是弱齡。爲倭所擄。離棄親鄕。所見矜惻。各令所擒之官。賑恤安居。事定後。還送舊土事。各別開諭。

 

 

적을 치기 전후

 

 

 

남해의 동쪽 웅천 등 칠팔읍의 사내, 노인, 선비, 여자 등의 피난민이 산골짜기에 숨어있다가 

 

 

신등이 적선을 추격하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다시 살수 있는 길을 얻은 것처림

 

 

       
       

 

흔쾌히 와서 적의 거류하는 곳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의 궁함이 극에 달하고 참담하고 측은함이 극에 달해서 

 

 

왜선에서 빼았은 쌀과 옷감 등의 물건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使

 

안전한 곳에 피해 있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중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어부의 무리 들도 있었습니다. 가족과 친척들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본영에 스스로 오는 자들이 끊임없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수가 200여명에 달합니다.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고 장기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본영 근처 장생포 등 토지가 넓고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마을 여러 곳으로 나누어 받아서 보살피도록 하였습니다.

 

 

왜선에 포로로 잡혀서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살려서 데려오라고 했고

 

 

왜인을 참하거나 배를 불태울 때 각별히 살피라고 했으며 

 

 

삼가 망령되이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여러 번 훈계하고 약속했습니다. 

 

 

 

제장들이 데려온 포로된 남녀는 6명이었고 나머지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포로가 된다거나 적이 한일을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중 당항포 외양에서 

 

鹿

 

 

녹도 만호 정운이 잡아온 동래 사노비 억만은 나이가 13세이고

 

 

왜인처럼 머리를 자르고 있었고 문초했을 때 

 

 

동래 동문 외련지동에 사는 사람이고 변이 생겼을 때

 

 

부모를 따라 동래성에 들어갔고 날짜가 불명확한 4월 어느날 

 

 

왜적이 무수히 와서 모이더니 동래성을 다섯 겹이으로 포위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적들은 들에 두루 펼쳐져 있고 선봉에 선 적은 갑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각자 큰 깃대를 지니고 있고 

 

 

큰 투구를 쓴 사람 100여명이 성에 돌입하고

 

 

한 쪽에서는 대나무 사다리를 설치하여 담을 넘었다고 합니다. 성은 이미 함락되어 보이자 

 

 

사람 죽이는 일이 극에 달했다고 합니다. 

 

 

 

억만은 이런 상황에서 친형을 잃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하늘을 보고 소리쳐 울고 있던 중 왜부의 손에 강제로 이끌려

 

 

바로 부산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오육일을 묵은 후에 

 

 

배에 태워 졌는데 배에는 칠팔명의 왜인이 있었는데

 

 

자신을 보자 소리지르며 칼로 찌르려고 하자

 

 

인솔해 갔던 왜인이 팔로 가려서 못하게 하고 갑판아래 가두었다고 했습니다. 

 

 

왜선의 수가 몇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배에 있은지 오육일 후 대선 30여척이 동시에 발선하여 우도를 향했다고 합니다. 

 

 

그 중 층각선에는 장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여러 배들이 그 아래에 모여서 명령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3척씩 나뉘어져서 여염집을 분탕질하고 소와 말을 칼로 잡고 베와 곡식 잡물을 그 배에 실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을 하루에 두세번 하는 날도 있었다고 합니다. 

 

 

배를 타고 지나온 마을의 이름들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6월 5일 네척의 배가 진해 선창에 가서

 

 

그 중 절반이 성에 들어 간 후 오래지 않아 

 

 

 

진해 성 밖에서 수천의 갑옷 입은 병사들이 진해성에 쳐들어 갔는데 병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고 합니다. 

 

 

성에 들어 갔던 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달려서 되돌아 와 배에 타서 노를 바삐 저어 먼 바다로 나갔다고 했습니다.

 

西

 

또한 돛을 단 전투선이 서해로 부터 덮쳐 오는 것을 보고 

 

 

적은 도망칠 수 없음을 알고 떨며 불안해 했고 입이 말랐다고 했습니다. 

 

 

심과 담이 모두 꺽여서 대선을 버리고

 

 

작은 배를 타고 멀지 않은 포구로

 

 

노를 저어 도망했다고 했습니다. 

 

 

노비 억만과 전날 잡히 진해 사는 절노비 나근내 등은 대선에 태워친채 버려져서

 

 

잡혀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왜인은 각자 창검과 철환을 지니고 있었다고 했고 밥에는 모래가 반쯤 섞여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일들은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어서 전해 줄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율포 앞바다 전투때에 

 

鹿

 

 

녹도만호 정운이 잡아온 천성수군 정달망은 14세이고 

 

 

변이 생긴후 부모를 따라 산에 들아간 후 

 

 

 

배고프고 지쳐서 날짜를 알수 없는 유월초에 천성근처 들에서 밀이삭을 꺽어

 

 

연명하려고 내려왔다 왜적에게 붙잡혔다고 했습니다. 

 

 

 

당일 영등포 근처 해안에 정박중인 적선들은 노획한 물건을 말리고 있었는데 

 

 

우리 나라 수군이 돌진했을 때 

 

 

 

왜적은 넘어지고 잡은 것을 놓치며 즉시 닻줄을 끊고 소리치며 배에 올라 먼 바다까지 도망쳤는데 지쳐서 붙잡혀 왔다고 했습니다. 

 

 

 

각 사람은 모두 나이가 어리고 왜놈들에게 포로가 되고 고향을 떠나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각령의 소금지관들에게 편안하게 살수 있도록 구휼하라고 지시 하였습니다. 

 

 

                 
               

 

사변이 안정되면 고향으로 돌려보내도록 각별히 일렀습니다. 

 

 

倭船焚滅元數七十二隻。倭頭八十八級。割左耳沈鹽。入樻上送矣。臣當初約束時。諸將軍卒等。要功貪利。爭先斬頭。反被其害。死傷者例多。故射殺後雖未斬頭。力戰者。爲首論功事申令。凡四度接戰時。逢箭死倭極多。而斬首不多。慶尙右水使元均。接戰翌日。分遣挾船。庶幾收斬。而慶尙沿海鮑作等。逢箭死倭。多數斬來。臣以他道大將捧上未穩。元均處入納事開說以送。元均,李億祺等諸將所斬。幾至二百級。或漂溺海中。或斬首沈失。其數亦多。倭物內不關倭服米布等物。或分給戰士。或饋餉軍卒。軍物中抽出最關之物。開坐于後。虞候李夢龜所得倭將符信,金團扇,藏漆匣及防踏僉使李純信所納倭將分軍件記六軸。幷爲監封上送。

 

 

왜선 72척을 분멸하였고 

 

 

왜인 머리 88급을 베었습니다. 왼쪽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

 

 

궤에 넣어 올려보냈습니다. 신이 처음에 약속하기를 

 

 

제장들과 군졸들이 공을 탐하여

 

 

머리를 베는데 경쟁하면 반대로 그 해를 받을수 있고

 

 

사상자가 많아 질수 있기 때문에 사살후에 머리를 베지 않아도

 

 

전투에 힘 쓴자의 공을 먼저 인정해 주겠다고 명령했습니다. 

 

 

네 차례의 접전 시 

 

 

화살 맞아 죽은 왜적의 수가 극도로 많았지만 목을 벤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使

 

沿

 

경상 우수사 원균은 접전 다음날 협선을 보내서 수급을 모았습니다. 

 

 

 

경상 연해 어부등이 화살 맞아 죽은 왜적 수급을 다수 베어 왔는데 

 

 

신이 타도 대장으로 받는데 미온적이자 원균에게 가져가서 바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습니다. 

 

 

 

원균, 이억기 등 제장들이 벤 수급이 이백급 정도 되고 

 

 

표류하여 익사하거나 참수하였는데 물에 빠져버린 수 또한 많습니다. 

 

 

 

왜적에게 빼았은 옷, 쌀, 옷감 등은 군사 들에게 나누어주고 먹였습니다. 

 

 

 

군물 중 중요한 것들 몇가지가 있습니다 .

 

 

우후 리몽구가 획득한 왜장 부신, 금단선, 장칠갑 등을 

 

使

 

 

방답첨사 이순신이 획득한 왜장 분군 기록 육축과 함께 봉하여 올려 보냈습니다. 

 

 

接戰時。士卒逢箭中丸人中。臣所騎船正兵金末山,虞候船放砲鎭撫張彦己,順天一船射夫私奴裵貴實,二船格軍私奴莫大,鮑作內隱石,寶城一船射夫官奴起伊,興陽一船箭匠官奴難成,蛇渡一船射夫鎭撫張希達,呂島沙工土兵朴古山,格軍朴宮山等。中鐵丸致死。興陽一船射夫牧子孫長水。下陸倭賊追斬時。逢刃致死。順天一船射夫保人朴訓,蛇渡一船射夫鎭撫金從海等。逢箭致死。順天一船射夫柳貴希,光陽船格軍鮑作南山壽,興陽船船將水軍朴百世,格軍鮑作文世,訓噵正兵陳春日,射夫正兵金福壽,內奴高朋世,樂安統船射夫趙千軍,水軍宣進近,無上私奴世遜,鉢浦一船射夫水軍朴長春,土兵張業同,放砲水軍禹成福等。中丸不至重傷。防踏僉使率奴彦龍,光陽船放砲匠徐千龍,射夫白內隱孫,興陽一船射夫正兵裵大檢,格軍鮑作末孫,樂安統船長興助防高希星,綾城助防崔蘭世,寶城一船軍官金益水,射夫吳彦龍,無上鮑作欣孫,蛇渡一船軍官陳武晟,林弘楠,射夫水軍金億壽,陳彦良,新選許福男,助防田光禮,放砲匠許元宗,土兵鄭於金,呂島船射夫石千介,柳修宣,有石等。逢箭不至重傷。各人等冒犯矢石。决死進戰。或死或傷。故致死人屍身。各令其將。別載小船。歸葬本土。其妻子。依他恤典施行。不至重傷人等。分給藥物。十分救療事。各別嚴飭諸將。則毋狃一捷。慰撫戰士。更勵舟楫。聞變卽赴。終始如一事嚴飭。罷陣。

 

 

 

접진 시 화살에 맞고 총탄에 맞은 사졸들 중

 

 

신이 탄 전선의 정병  김말산

 

 

우후선 방포 진무 장언기

 

 

일선 사부 노비 배귀실

 

 

이선 격군 노비 막대, 어부 내은석

 

 

보성일선 사부 관노 기이

 

 

흥양 일선 전장 관노 난성

 

 

사도 일선 사부 진무 장희달

 

 

여도 사공 토병 박고산

 

 

격군 박궁산 등이 철환을 맞고 전사하였습니다. 

 

 

흥양 일선 사부 목자 손장수가 

 

 

상륙하여 적을 추격하여 목을 벨때 칼에 맞아 전사하였습니다. 

 

 

순천 일선 사부 보인 박훈

 

 

사도 일선 사부 진무 김종해 등은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습니다. 

 

 

순천 일선 사부 류귀희, 광양선 격군 어부 남산수

 

 

흥양선 선장수군 박백세

 

 

격군 어부 문세

 

 

훈도정병 진춘일, 사부정병 김복수

 

 

노비 고붕세, 

 

 

낙안 통선사부 조천군, 수군 선진근

 

무상 사노비 세손, 

발포이런 사부 수군 박장춘, 토병 장업동

방포 수군 우성복 등은 

使

탄환을 맞았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방답첨사가 거느린 노비 언룡, 

광양선 방포공 서천룡, 

사부 백내은손

흥양일선 사부 정병 배대검, 격군 어부 말손, 

낙안 통선 장흥 조방 고희성, 

능성 조방 최란세 

보성 일선 군관 김익수, 사부 오언룡

무상 어부 흔손, 

사도 일선 군관 진무성, 임홍남, 

사부 수군 김억수, 진언량, 신선 허복남, 

조방 전광례

방포공 허원종, 토병 정어금

여도선 사부 석천개, 류수선, 유석 등이

화살을 맞았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각 사람은 날아오는 화살을 무릅쓰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습니다. 

죽기도 하고 상하기도 하였는데 전사한 시신들은

각 수령들이 소선에 태워서 집으로 보내서 장례치르게 했습니다. 

그 처자들에게 휼전을 시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중상에 이르지 않은 사람들은 약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치료를 잘 하도록 제장들에게 엄히 일렀습니다. 

한 번 이겼다고 마음을 놓치 말고 군사들을 위무하고 

전선과 노를 수리하여 변란을 듣는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끝맺음과 시작함이 같도록 엄히 이른 후 진을 파하였습니다.

 

 

中衛將權俊,前部將李純信,中部將魚泳潭,後部將裵興立,左部將申浩,右部將金得光,左斥候將鄭運,右斥候將金浣,龜船突擊將及第李奇男,臣軍官李彦良,左別都將李夢龜,右別都將金仁英,捍後將臣軍官前權管賈安策,及帶率軍官奉事卞存緖,羅大用,前奉事宋希立,李渫,申榮海,及第金孝誠,裵應祿,定虜衛李鳳壽等。奮不顧身。終始力戰。羣下吏士爭首赴敵人等論功褒奬事。若待朝廷命令後磨鍊。則往復之間。時月遲延。加之以行在所隔遠。道路阻塞。人不能通行。劇賊未退。賞不可逾時。慰激軍情。以勤當前之事。爲先參酌功勞。分秩一二三等。別狀開坐。當初約束時。雖未斬頭。以死力戰者。爲首論功。力戰各人等。臣親執磨鍊一等參錄。

 

 

 

 

 

 

 

 

 

 

 

 

祿

 

몸을 돌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앞 다투어 전투에 참가한 군사들에 대한 공을 포상하는 일에

조정의 명령을 기다려 마련하면 왕복하는 중에 

시간이 지연될 것이고 행재소가 멀어 시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고 

도로가 막혀 통행이 불가하게되고

退

적이 아직 퇴각하지 않아서 제시간에 포항하는 것이 불가하기에 

전투에 힘쓰도록 군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공로에 따라 일이삼등으로 나누고

특별히 그 공을 기록하였습니다. 처음 약속했던 대로

수급을 자르지 않았지만 죽기로 싸운자는

으뜸의 공으로 인정한다고 하였으므로

         
         

신이 친히 일등 참록에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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