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1592년 임진년

1592년 임진년 3월

먹물 한자 2022. 6. 18. 10:32
반응형
1592년 3월 1일
 
帿
 
初一日辛酉。行望闕禮。食後。點別軍及正兵。下番軍點放。公事後。射帿十廵。
 
초일일신유。행망궐례。식후。점별군급정병。하번군점방。공사후。사후십순。
 
1일 신유. 망궐례를 행했다. 식후에 별군으로 뽑혀 온 정병들을 점고했다. 하번군을 점고하고 보냈다. 공무를 본 후 과녁에 화살을 60발 쏘았다.
 
1592년 3월 2일
 
 
初二日壬戌。陰而風。以國忌不坐。僧軍百名拾石。
 
초이일임술。음이풍。이국기불좌。승군백명습석。
 
2일 임술.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국가의 기념일로 공무를 보지 않았다. 승군 백여명이 돌을 주워 날랐다.
 
1592년 3월 3일
 
 
初三日癸亥。雨雨終夕。是日佳節。而雨勢若此。不能踏靑。與趙而立,虞候軍官輩。共話盃酌于東軒。
 
초삼일계해。우우종석。시일가절。이우세약차。불능답청。여조이립,우후군관배。공화배작우동헌。
 
3일 계해. 저녁 내내 비가 왔다. 명절이지만 비가 와서 답청을 할 수 없었다. 조이립, 우후 군관들과 동헌에서 같이 이야기하며 술을 마셨다.
 
1592년 3월 4일
 
西
 
初四日甲子。晴。朝。趙而立餞別。出客舍中大廳公事後。廵見西門垓坑及城加築處。僧軍拾石不實。故首僧决杖。牙山問安羅將入來。聞天只平安。多幸多幸。
 
초사일갑자。청。조。조이립전별。출객사중대청공사후。순견서문해갱급성가축처。승군습석불실。고수승결장。아산문안라장입래。문천지평안。다행다행。
 
4일 갑자. 맑음. 아침 조이립을 전별했다. 객사의 중대청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서문 해자 파는 곳과 성을 추가로 쌓는 곳을 순시했다. 승군의 돌줍는 것이 불성실하여 승군 우두머리를 장으로 다스렸다. 아산에 문안 갔던 라장이 들어왔다. 어머님이 평안하시다니 다행이다.
 
1592년 3월 5일
 
帿
 
初五日乙丑。晴。出東軒公事。軍官等射帿。○暮。上京鎭撫入來。左台簡與增損戰守方略冊送來。見之則水陸戰火攻等事。一一論議。誠萬古之奇論也。
 
초오일을축。청。출동헌공사。군관등사후。○모。상경진무입래。좌태간여증손전수방략책송래。견지즉수륙전화공등사。일일론의。성만고지기론야。
 
5일 을축.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군관들과 과녁에 화살을 쏘았다. 저물어서 서울 갔던 진무가 들어왔다. 좌의정의 편지와 증손번수방략이라는 책을 보내왔다. 책의 내용을 보니 수력전, 화공 등에 대해 일일이 논해 놓았다. 기이한 책이다.
 
1592년 3월 6일
 
 
初六日丙寅。晴。朝食後。出坐。軍器點閱。弓甲兜鍪筩兒環刀。則多有破毁之物。不成㨾者甚多。色吏,弓匠,監考等論罪。
 
초륙일병인。청。조식후。출좌。군기점열。궁갑두무통아환도。즉다유파훼지물。불성양자심다。색리,궁장,감고등론죄。
 
6일 병인. 맑음. 아침식사후 동헌에 출근해서 군기물을 점고했다. 활, 갑옷, 투구, 화살통, 환도 등이 많은 수가 파손되고 훼손되었다. 불성실한 색리, 궁장, 감독자들의 죄를 벌했다.
 
1592년 3월 7일
 
帿
 
初七日丁卯。晴。出東軒公事。射帿。
 
초칠일정묘。청。출동헌공사。사후。
 
7일 정묘.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후 과녁에 화살을 쏘았다.
 
1592년 3월 8일
 
 
初八日戊辰。雨雨終日。
 
초팔일무진。우우종일。
 
8일 무진. 종일 비가 내렸다.
 
1592년 3월 9일
 
 
初九日己巳。雨雨終日。出東軒公事。
 
초구일기사。우우종일。출동헌공사。
 
9일 기사. 종일 비가 내렸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1592년 3월 10일
 
帿
 
初十日庚午。晴而風。出東軒公事後。射帿。
 
초십일경오。청이풍。출동헌공사후。사후。
 
10일 경오. 맑고 바람 불었다. 동헌에 나가 공사를 본 후 과녁에 화살을 쏘았다.
1592년 3월 11일
 
 
十一日辛未。晴。
 
십일일신미。청。
 
11일 신미. 맑음.
 
1592년 3월 12일
 
帿
 
十二日壬申。晴。食後出往船上。點京江船。乘舟出召浦。時東風大起。無格還歸。直坐東軒。射帿十廵。
 
십이일임신。청。식후출왕선상。점경강선。승주출소포。시동풍대기。무격환귀。직좌동헌。사후십순。
 
12일 임신. 맑음. 식후에 배에 올랐다. 경강선을 점고하였다. 배를 타고 소포에 가려했지만 동풍이 크게 일었다.격군도 없어 되돌아 왔다. 동헌에 가서 과녁에 화살을 60발을 쏘았다.
 
1592년 3월 13일
 
使
 
十三日癸酉。朝陰。廵使簡來。
 
십삼일계유。조음。순사간래。
 
13일 계유. 아침에 흐렸다. 순사의 편지가 왔다.
 
1592년 3월 14일
 
使使
 
十四日甲戌。大雨終日。早朝。以廵使相會事往順天。雨勢大作。去路不辨。艱到先生院秣馬。行到海農倉坪。路上水深。幾至三尺。間關到府。夕。與廵使話阻。
 
십사일갑술。대우종일。조조。이순사상회사왕순천。우세대작。거로불변。간도선생원말마。행도해농창평。로상수심。기지삼척。간관도부。석。여순사화조。
 
14일 갑술. 종일 큰 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 순사와 만나려고 순천으로 갔다. 비가 세차게 내려서 가는 길을 분별할 수 없었다. 간신히 선생원에 도착해서 말에게 먹이를 주었다. 해농창평에 다다랐을 때 노상 수심이 삼척이나 되었다. 간신히 도착했다. 저녁 순사와 밀렸던 이야기를 나눴다.
 
1592년 3월 15일
 
帿
 
十五日乙亥。陰而細雨。晩收。坐樓上射帿。軍官等分邊射。
 
십오일을해。음이세우。만수。좌루상사후。군관등분변사。
 
15일 을해. 흐리고 가는 비가 내림. 저녁이 되어 걷혔다. 누각에 올라 과녁에 화살을 쏘았다. 군관들이 편을 나누어 화살을 쏘았다.
 
1592년 3월 16일
 
帿
 
十六日丙子。晴。順天設酌于喚仙亭。兼射帿。
 
십륙일병자。청。순천설작우환선정。겸사후。
 
16일 병자 맑음. 순천부사가 술자리를 산위 정자에 마련하고 불렀다. 과녁에 활 쏘기도 같이 했다.
 
1592년 3월 17일
 
使
 
十七日丁丑。晴。曉。告歸廵使。來到先生院。秣馬後。還營。
 
십칠일정축。청。효。고귀순사。래도선생원。말마후。환영。
 
17일. 정축. 맑음. 새벽에 순사에게 돌아간다고 말하고 나와서 선생원에 도착해서 말에게 꼴을 먹인 후 영으로 돌아왔다.
 
1592년 3월 18일
 
 
十八日戊寅。晴。出東軒公事。
 
십팔일무인。청。출동헌공사。
 
18일 무인.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1592년 3월 19일
 
 
十九日己卯。晴。出東軒公事。
 
십구일기묘。청。출동헌공사。
 
19일 기묘.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1592년 3월 20일
 
 
二十日庚辰。雨勢大作。晩出東軒公事。各房會計。○順天搜討。未及期限。故代將及色吏,都訓導等推論。蛇渡亦以期會事移文。而獨爲搜討。又半日之內。內外羅老島大小平斗搜討。同日還浦云。事甚虛僞。以此推考事行移興陽,蛇渡。以氣甚不平早入。
 
이십일경진。우세대작。만출동헌공사。각방회계。○순천수토。미급기한。고대장급색리,도훈도등추론。사도역이기회사이문。이독위수토。우반일지내。내외라로도대소평두수토。동일환포운。사심허위。이차추고사행이흥양,사도。이기심불평조입。
 
20일 경진. 비가 세차게 내렸다. 늦은 시간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각 방의 회계 처리를 하였다. 순천 지역 수색 검토하는 일이 기한을 어겼기에 대장부터 색리, 도훈도에 이르기 까지 죄를 물었다. 사도 첨사에게도 공문을 보냈는데 혼자 수색을 완료했다고 했다. 반일 만에 내외나로도와 대소평두 모두를 수색하고 같은 날 돌아왔다고 하니 거짓말도 이런 거짓말이 없다. 흥양 현감, 사도 첨사에게 나무라는 공문을 보냈다. 마음이 불편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592년 3월 21일
 
 
二十一日辛巳。晴。氣不平。終朝卧痛。晩出東軒公事。
 
이십일일신사。청。기불평。종조와통。만출동헌공사。
 
21일 신사. 맑음. 몸이 불편하고 아침 내내 누워있는데 통증이 있었다. 늦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1592년 3월 22일
 
 
二十二日壬午。晴。以城北峯下水渠掘出事。虞候及軍官十人分送。食後。出東軒公事。
 
이십이일임오。청。이성북봉하수거굴출사。우후급군관십인분송。식후。출동헌공사。
 
22일 임오. 맑음. 성북쪽 봉화대 아래 우수 도랑 파는 일에 우후에게 10명의 군관을 붙여서 보냈다. 식후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1592년 3월 23일
 
使使
 
二十三日癸未。朝陰晩晴。食後。東軒公事。寶城板子趁未輸納。色吏更爲發關推捉。順天上使蘇國進。决杖八十。廵使送簡言鉢浦權管。不合領軍之才。處置云。故姑勿遆差。仍留防備事。答送。
 
이십삼일계미。조음만청。식후。동헌공사。보성판자진미수납。색리갱위발관추착。순천상사소국진。결장팔십。순사송간언발포권관。불합령군지재。처치운。고고물체차。잉류방비사。답송。
 
23일 계미. 아침에 흐렸으나 저녁에 개었다. 식후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보성군의 판자가 아직 납품되지 않아 색리에게 다시 공문을 띄워 독촉하라고 했다. 순천에서 올라온 사환 소국진에게 곤장 80대를 판결하였다. 순사의 편지에 발포권관이 군을 지휘할 재목이 못 된다고 교체하겠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교체하지는 말고 방비하는 일에 남겨두자고 답을 보냈다.
 
1592년 3월 24일
 
使使
 
二十四日甲申。以國忌不坐。虞候搜討。無事還來。廵使,都事答簡。宋希立並持來。廵使簡中。嶺南方伯致簡曰。島主書契。曾有一船出送。而若未到貴國。則必爲風所敗云。其言極凶詐。東萊相望之海。萬無如是之理。而作辭如此。其爲譎詐難測云。
 
이십사일갑신。이국기불좌。우후수토。무사환래。순사,도사답간。송희립병지래。순사간중。령남방백치간왈。도주서계。증유일선출송。이약미도귀국。즉필위풍소패운。기언극흉사。동래상망지해。만무여시지리。이작사여차。기위휼사난측운。
 
24일 갑신. 국가의 기념일로 공무를 보지 않았다. 우후가 수색 나갔다가 아무일 없이 무사히 돌아왔다. 순사와 도사의 답간을 송희립이 같이 가져왔다. 순사의 편지 중 영남 방백의 편지에 대마 도주의 공문에 또 한 척의 배를 보냈는데 귀국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 아마 배가 바람에 휩쓸려 난파되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흉한 거짓말이다. 동래에서 서로 바라다 볼 수 있는 거리의 바다인데 이럴 리 만무하다. 속이는 말이다. 그 간사함이 측정하기 어려울 만치 간사하다.
 
1592년 3월 25일
 
帿使
 
二十五日乙酉。晴而大風。出東軒公事後。射帿十廵。慶尙兵使。不到平山浦而直向南海云。余以未得相面爲恨之意答送。廵見新築城。而南邊九把許頹破矣。
 
이십오일을유。청이대풍。출동헌공사후。사후십순。경상병사。불도평산포이직향남해운。여이미득상면위한지의답송。순견신축성。이남변구파허퇴파의。
 
25일. 을유. 맑았으나 바람에 크게 불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후 과녁을 향해 화살 60발을 쏘았다. 경상 병사가 평산포에 도착하지 않고 곧바로 남해를 향해 갔다고 한다. 나는 서로 상면하지 못해 아쉽다는 답장을 보냈다. 새로 쌓는 성을 순시했다. 성 남쪽이 아홉발이나 무너져 있다.
 
1592년 3월 26일
 
帿
 
二十六日丙戌。晴。虞候與宋希立往南海。○晩出東軒公事後。射帿十五廵。
 
이십륙일병술。청。우후여송희립왕남해。○만출동헌공사후。사후십오순。
 
26일 병술. 맑음. 우후와 송희립이 남해에 갔다. 늦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후 과녁에 화살 90발을 쐈다.
 
1592년 3월 27일
 
 
二十七日丁亥。晴而無風。早食後。騎船到召浦。監鐵鎖橫設。終日觀立柱木。兼試龜船放砲。
 
이십칠일정해。청이무풍。조식후。기선도소포。감철쇄횡설。종일관립주목。겸시구선방포。
 
27일 정해. 맑고 바람이 없었다. 아침 식사 후 배를 타고 소포에 도착했다. 철쇄를 가로로 설치하는 일을 감독했다. 종일 기둥목 세우는 것을 보았다. 거북선에서 포 쏘는 것을 시험하였다.
 
1592년 3월 28일
 
帿
 
二十八日戊子。晴。東軒公事。射帿十廵。則五廵連中。二廵四中。三廵三中。
 
이십팔일무자。청。동헌공사。사후십순。즉오순련중。이순사중。삼순삼중。
 
28일 무자.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과녁에 화살 60발을 쏘았다. 오순은 모두 적중. 이순은 4발, 삼순은 3발이 적중했다.
 
1592년 3월 29일
 
 
二十九日己丑。晴。以國忌不坐。牙山問安羅將入來。聞天只平安。多幸多幸。
 
이십구일기축。청。이국기불좌。아산문안라장입래。문천지평안。다행다행。
 
29일 기축. 맑음. 국가의 기념일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아산에 문안 갔던 라장이 들어왔다. 어머님께서 평안하다 하시니 다행이다.
 
728x90

'난중일기 > 1592년 임진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92년 5월 4일~7일 옥포 해전  (0) 2022.08.06
1592년 임진년 5월  (0) 2022.07.31
1592년 임진년 4월  (0) 2022.06.18
1592년 임진년 2월  (0) 2022.06.15
1592년 임진년 1월  (0) 2022.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