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조선 초기 3

이성계의 왜구 토벌 황산 전투 (1380년 9월)

황산 전투는 이성계가 북방에서 원나라와 홍건적과 싸워서 이긴 후 지리산 북쪽 남원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한 전투이다. 왜구들은 서해안 서천에 배를 대고 상륙하여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를 유린한 후 황산에 주둔하고 있었다. 고려군이 화포로 배를 공격하여 불태우고 황산의 산악지형에서 각개 전투를 통해 왜구를 토벌했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왜구들이 대포가 없었고 조총이 없었기에 말을 타고 싸우는 아주 고전적 평지 전투의 전력만 있었기에 공성전과 평지전 기마전 산악전 등 다양한 전투 경험을 보유한 이성계의 병력에 의해 충분히 제압되었다. 일본은 이런 약점을 임진왜란때 조총으로 보완하여 조선을 침공하게 된다.조선의 육군은 200년동안 이순신의 함포 공격과 함대 공격과 같은 혁신적인 전술 개발 없이 기존 승리에 ..

쌍성총관부 수복 (1356년)

이성계는 전주 이씨인데 원나라 소속의 쌍성총관부가 있던 함경도에서 태어났고 쌍성총관부 탈환에 공을 세워 고려인이 되기 전까지 원나라 관리였다. 왜 전주 이씨인 이성계 일가가 원나라 치하에 있는 함경도로 갔을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고려 말 전주, 관기와 사랑에 빠진 이안사...그런 가운데 전주에 파견 나온 정부 관리도 그 관기를 사랑하게 돼 결국 삼각관계가 되는데... - 이후 이안사는 삼척으로 부임하게 되지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정부 관리 역시 강원도로 부임, 이안사는 삼척에서 다시 함경도 원산으로 도주한다. 함경도 이주 후 100년이 흐르고...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은 고려 귀화를 결심하는데... - 쌍성총관부 탈환의 공을 인정받아 고려로 귀환하게 된 이..

홍건적의 2차 침입 , 개경 함락 ( 1361년 ) , 개경 수복 ( 1362년 )

홍건적이 1차로 침입하였다가 물러난 후 고려조정에서는 적의 침입에 대비한 조치를 강구하였다. 공민왕 10년(1361) 10월에는 각 도에 사람을 보내어 軍의 현황을 점검하여 긴급 출동태세를 확립하도록 하고 각 사찰에서 보유하고 있는 말을 차출토록 하였으며, 그 다음달에는 公侯 이하의 지배층들로 하여금 위계에 따라 차등을 두어 戰馬를 내도록 지시하였다.588) 이러한 조치들은 당시 남쪽의 왜구와 북의 홍건적으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 조정에서 얼마나 고심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이러한 상황 아래 홍건적은 공민왕 10년 10월에 潘誠·沙劉·關先生·朱元帥·破頭潘 등이 10여 만의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朔州에 침입하였다.589) 이들은 앞서 침입했던 적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산서지방으로부터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