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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최후의 결전 01 |
李舜臣與唐將陳璘扼海口以逼之﹒ 行長求援於泗川賊沈安頓吾頓吾從水路來援﹒ 舜臣進擊大破之焚賊船二百餘艘殺獲無算追至南海界﹒ |
李舜臣與唐將陳璘扼海口以逼之﹒ 行長求援於泗川賊沈安頓吾頓吾從水路來援﹒ 舜臣進擊大破之焚賊船二百餘艘殺獲無算追至南海界﹒ |
리순신여당장진린액해구이핍지﹒ 행장구원어사천적심안돈오돈오종수로래원﹒ 순신진격대파지분적선이백여소살획무산추지남해계﹒ |
이순신과 명의 진린은 해구를 틀어막고 쳐들어갔다. 행장은 사천에 있는 심안돈오에게 구원병을 요청하였고 돈오가 수래를 따라 오고 있었다. 순신은 앞으로 나가 적선 200여척을 격파했고 죽인 적의 수를 셀수가 없었고 남해의 경계 (노량) 까지 적선을 쫓아갔다. |
60. 최후의 결전 03 |
舜臣親犯矢石力戰有飛丸中其胸出背後左右扶入帳中﹒ 舜臣曰 戰方急愼勿言我死﹒」言訖而絶﹒ |
舜臣親犯矢石力戰有飛丸中其胸出背後左右扶入帳中﹒ 舜臣曰 戰方急愼勿言我死﹒」言訖而絶﹒ |
순신친범시석력전유비환중기흉출배후좌우부입장중﹒ 순신왈 전방급신물언아사﹒」언흘이절﹒ |
순신은 몸소 화살과 탄환을 무릎쓰고 힘을 다해 싸우다가 날아오는 탄환을 가슴에 맞았고 그 탄환은 등뒤로 빠져나갔다. 좌우에 부장들이 장막안으로 들어오게 했는데 순신은 전투가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것을 말하지 말라고 하고 말을 그치고 목숨이 끊어졌다. |
60. 최후의 결전 04 |
舜臣兄子莞素有膽量秘其死以舜臣令督戰盆急軍中不知也﹒ 陳璘所乘舟焦賊所圍莞望見揮其兵求之. 賊散去璘使人于舜臣謝求己始聞其死從椅上自投於地曰. |
舜臣兄子莞素有膽量秘其死以舜臣令督戰盆急軍中不知也﹒ 陳璘所乘舟焦賊所圍莞望見揮其兵求之. 賊散去璘使人于舜臣謝求己始聞其死從椅上自投於地曰. |
순신형자완소유담량비기사이순신령독전분급군중불지야﹒ 진린소승주초적소위완망견휘기병구지. 적산거린사인우순신사구기시문기사종의상자투어지왈. |
순신의 형의 아들 완은 담량이 있어 순신의 죽음을 비밀로 하고 전투를 감독하니 군대는 그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진린이 탄 배가 적에게 둘러 쌓였을 때 완이 이를 보고 그 병력을 지휘하여 구하였다. 적이 흩어져가자 린은 사람을 시켜 순신에게 자기를 구해줘서 감사하는 말을 전하자 비로소 그 죽음을 듣게되자 앉았던 의자에서 쓰러지며 말했다. |
60. 최후의 결전 05 |
吾意老爺生來求我何故亡耶﹖ 拊膺大慟一軍皆哭聲震海中﹒ 行長乘舟師追跡過其營自後逸去﹒ 先是七月候醋平秀吉已死故沿海賊屯悉退﹒ |
吾意老爺生來求我何故亡耶﹖ 拊膺大慟一軍皆哭聲震海中﹒ 行長乘舟師追跡過其營自後逸去﹒ 先是七月候醋平秀吉已死故沿海賊屯悉退﹒ |
오의로야생래구아하고망야﹖ 부응대통일군개곡성진해중﹒ 행장승주사추적과기영자후일거﹒ 선시칠월후초평수길이사고연해적둔실퇴﹒ |
나는 노야가 살아서 나를 구해준줄 알았는데 어찌 돌아가셨단 말인가요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자 군사들이 모두 곡을 해서 바다가 진동되었다. 행장은 배를 타고 수군에 쫓기다가 지나치는 틈을 타서 뒤로 빠져나가 달아나고 말았다. 7월 수길이 이미 전사했기때문에 연안의 적들은 모두 물러갔다. |
60. 최후의 결전 06 |
我軍與唐軍聞舜臣死連營慟哭如哭私親﹒ 柩行所至人民處處設祭挽車而哭曰 公實生我今公棄我何之 道路擁塞車不得進行路之人無不揮涕﹒ 贈議政府右議政﹒ |
我軍與唐軍聞舜臣死連營慟哭如哭私親﹒ 柩行所至人民處處設祭挽車而哭曰 公實生我今公棄我何之 道路擁塞車不得進行路之人無不揮涕﹒ 贈議政府右議政﹒ |
아군여당군문순신사련영통곡여곡사친﹒ 구행소지인민처처설제만차이곡왈 공실생아금공기아하지 도로옹새차불득진행로지인무불휘체﹒ 증의정부우의정﹒ |
아군과 명군이 모두 순신의 전사를 듣고 진영에서 자기 아버지가 죽은 것처럼 통곡했다. 영구가 가서 닿는곳 마다 사람들어 제사를 드리고 영구차를 붙들고 곡을하며 말했다. 공께서 우리를 살려놓으시더니 지금은 공이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했다. 도로는 좁아서 영구차가 지나갈 수 없었고 길에 있는 사람들 중에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나라에서는 그에게 의정부우정의 벼슬을 주었다. |
60. 최후의 결전 07 |
邢軍門謂當立祠海上以獎忠魂事竟不行﹒ 於是海邊之人相率爲祠號曰愍忠以時致祭﹒ 商賈漁船往來遇其下者人人祭之云﹒ |
邢軍門謂當立祠海上以獎忠魂事竟不行﹒ 於是海邊之人相率爲祠號曰愍忠以時致祭﹒ 商賈漁船往來遇其下者人人祭之云﹒ |
형군문위당립사해상이장충혼사경불행﹒ 어시해변지인상솔위사호왈민충이시치제﹒ 상가어선왕래우기하자인인제지운﹒ |
형군문은 마땅히 바닷가에 세워서 그의 충혼을 기려야 한다고 했지만 실행되지는 않았다. 바닷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상의하고 민충이라는 사당을 지어서 때를 따라서 제사지냈다. 장사하는 사람 고기잡이하는 사람들은 그 아래로 지나다니다 각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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