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1598년 무술년

1598년 무술년 7월 19일 (잊혀진 대 해전 절이도 해전)

먹물 한자 2023. 1. 4.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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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1597년 9월) 때 13척의 판옥선으로 싸운 이순신제독은 불과 몇 개월만에 판옥선 85척 규모의 해군 함대를 구축하게된다. 함대를 구축한 이순신은 수군 8천여명을 데리고 1598년 2월 진을 고금도로 이동한다.

 

1598년 7월 19일 일본수군이 선제공격을 위해 고금도를 치기 위해 100여척의 함대를 이끌고 절이도(거금도)와 소록도 사이의 좁은 해협을 빠져나간다. 이순신은 절이도 해전에서 50여척의 적선을 분멸한다. 한산해전에서 분멸한 적선이 59척이기 때문에 한산해전에 준하는 큰 해전이다. 하지만 이 해전에 대한 기록이 난중일기나 장계에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이 해전을 잊혀진 해전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잊여진 전쟁 절이도 해전에 대한 기록을 모아보았다. 

 

조선왕조 실록 (선조실록 103권, 선조 31년 8월 13일 병인)

 

이순신의 절이도 해전 장계 내용에 대한 요약 부분

 

○統制使李舜臣馳啓曰: "頃日海中之戰, 我軍銃砲齊發, 撞破賊船, 賊屍滿海, 倉卒之際, 不得盡爲鉤斬, 只斬七十餘級。 天兵望見賊船, 避入遠洋, 一無所獲。 及見我軍斬獲之數, 陳都督立于船舷, 頓足叱退其管下, 恐嚇臣等, 無所不至, 臣等不得已送分四十餘級。 季遊擊亦送家丁求級, 臣送五級, 皆作帖謝之矣。"

 

"지난번 해상(海上) 전투에서 아군이 총포를 일제히 발사하여 적선(賊船)을 쳐부수자 적의 시체가 바다에 가득했는데, 급한 나머지 끌어다 수급을 다 베지 못하고 70여 급만 베었습니다. 중국 군대는 멀리서 적선을 바라보고는 원양(遠洋)으로 피해 들어가 하나도 포획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군사들이 참획한 수를 보고 진 도독(陳都督)이 뱃전에 서서 발을 둥둥 구르면서 그 관하(管下)를 꾸짖어 물리쳤으며 신 등에게 공갈 협박을 가하여 못하는 짓이 없었으므로 신 등이 마지 못해 40여 급을 나눠 보내줬습니다. 계 유격(季遊擊)도 가정(家丁)을 보내어 수급을 구하기에 신이 5급을 보냈는데 모두들 작첩(作帖)하여 사례하였습니다."

 

 

이충무공행록

 

 

이순신 장군의 조카인 이분이 충무공 사후에 쓴 <이충무공행록>에는 “7월 18일 적선 100여척이 녹도를 침범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공(이순신 장군)과 도독(진린)은 각각 전선을 거느리고 금당도에 이르렀다. 적선이 다만 2척이 있었는데 우리 군대를 보고 도망쳐 달아났다. 공과 도독이 그대로 돌아왔다”라고 나타나 있다. 또 <이충무공행록>의 7월 24일 기록에는 절이도에서 보고가 들어오기를, 새벽에 적을 만나 조선 수군이 물리쳤고 명나라 군대는 싸우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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